| 덕유산이 제격…골안개 피어나기 전 풍경은 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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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으로 알려진 곳 중 한국 산의 전형 세 곳을 꼽는다면 지리산, 오대산, 그리고 덕유산을 들고 싶다. 설악산이나 한라산도 엄연한 우리 산이지만 보편적 정서로 꼽는다면 그렇다.
지리산과 함께 남한의 대표적 육산답게 덕이 넉넉한 덕유(德裕)산-. 섬진강을 따라 남해바다로 내달리는 호남정맥의 종산 영취산을 사이에 두고 두 산은 서로 거울처럼 한국산의 전형을 보여준다. 남덕유와 북덕유의 모습이 어떤가를 지리산에서, 지리산 백리 주능선의 모습이 어떠한 가를 덕유산에서 볼 수 있다. 지리산만으로 우리 산하의 전형을 말하기란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전제는 바로 덕유산이 있음으로 가능하다. 남한의 대표적인 육산에 골도 깊어 어찌나 몸집이 큰지 이 산에만 숨어들면 누구든 쉽사리 찾지 못해 덕유산을 가르는 육십령에는 늘 도적이 들끓었다고 한다. 행인들은 약탈을 당하지 않기 위해 60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이미 조선시대 이야기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 이 지역이 무진장(무주·진안·장수)으로 불리는 오지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근거 없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그리고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큰 줄기가 빨치산의 근거였다는 것은 높고 깊은 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덕유산 자락엔 어느 능선에도 절이 없다. 산처럼 살다간 시인 김장호는 그 큰 품새와 넓이를 가진 덕유산에 제대로 된 사찰이 없는 사실에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산이 그렇게 커버리면 거기에 절도 성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천지 사방 툭툭 터진 곳에 수행자들의 은거지가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인가. 신라 때까지 14개 사찰이 있었고, 남덕유 아래에 영각사와 구천동 상류에 백련사가 있긴 하지만, 번듯한 본사급 절을 둔 지리산이나 오대산에 비한다면 그저 소박할 뿐이다. 덕유산은 능선 자체가 백두대간의 마루금이다. 그리고 대간 능선에서도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산의 흐름대로만 간다면 최상의 산행이 절로 이루어진다. 덕유산의 산행기점은 대체로 남에서 북으로, 또는 북에서 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원점으로 회귀하는 환상이 아니라 끝을 보는 직선의 패턴이다. 하지만 걷다 보면 직선조차도 곡선의 연결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출발점이 장수와 함양을 가르는 육십령이면 남덕유를 올라서 삿갓봉, 무룡산, 동엽령을 거쳐 백암봉으로 연결된다. 백두대간은 여기서 동쪽 방향으로 이어지고, 덕유산 주능선은 그대로 직진하여 중봉을 거쳐 향적봉까지 간다.
덕유의 정상 향적봉(1,614m)에 서면 어디를 보아도 높은 곳은 없다. 동으로는 지봉, 서쪽 멀리 말귀처럼 솟아오른 마이산, 남쪽으로는 남덕유, 북서쪽으로 적상산, 북으로는 속리산까지 모두 발 아래로 굽어보는 조망이다. 멀리 지리산 주능선만이 같은 눈높이를 이룰 뿐이다. 남에서 북으로 직선종주를 택하지 않는다면 무주구천동에서 백련사를 거쳐 정상에 오르거나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서 15분쯤 걸어 쉽게 향적봉에 오를 수 있다. 이렇게 오른 사람들은 대개 남덕유까지 가기 보단 다시 백련사로 내려가는 것이 보통이다.
어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향적봉까지 오른 사람에겐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의 의연한 모습과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덕유산에 오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각적 특권의 하나다. 복잡한 일에 약한 기계치나 사진의 문외한일지라도 여기까지 오게 되면 사진 찍고 싶은 충동이 한번쯤 일어나기 마련이다. | ||||||||




